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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자 | 23.02.01 14: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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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이유를 모르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너무 높은 곳도, 너무 낮은 곳도 무서웠다.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지하철을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심장이 두근대고 당장이라도 물에 빠질 것만 같았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혹시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불이 나서 집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밀어내려고 해도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일상생활은 어려워졌고, 낮에는 잠에 취해, 밤에는 낮에 잔 잠들로 인해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어딘가가 계속 아팠다. 두통이 나을듯하면 배가 아팠고, 배가 나으면 다시 어깨가 아팠다. 아픈 곳은 계속 바뀌었지만 늘 어딘가는 아팠다.

3년 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에 근무하면서 몇 년 전 내가 느꼈던 불안과 공포, 알 수 없는 신체적 통증이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에게 누구라도 너는 지금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회복할 수 있어!”라고 말해줬더라면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그리고 단기간에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2021년 국민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국민 중 65%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불편감이나 수 일간 지속된 우울감, 불안, 불면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한 사람 중 단 25%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가족이나 친지, 정신과 전문의 등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면 왜 쉽사리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일까?
위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면서도, 그냥 두면 자연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도움을 요청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불신, 정신건강 문제는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오해로 힘든 시간을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견뎌내고 있다.

정신건강문제가 발생했을 때 병원에 갔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서도 약 50%가 정신건강문제를 인지한 후 병원에 가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렸고, 이 중 약 13%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이 병원치료를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모두가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동의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것을 꺼리면서 스스로 이겨내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감기는 병원에 가지 않으면 7, 병원에 가면 일주일 만에 낫는다는 말이 있다.
정신건강문제는 그렇지 않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몇 개월, 몇 년, 누군가는 평생을 불편함과 힘듦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를 받으면 낫는 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노인과 바다로 잘 알려진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우울증과 망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양극성장애였던 음악가 슈만도 수차례 자살시도 끝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좋은 작품들로 눈과 귀를 호강시켜주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보다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가 괄목하게 성장한 지금, 그들이 치료를 잘 받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더 좋은 작품들로 더 오랜 기간 대중과 함께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수 있지만,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를 들었다면, 무시하거나 지체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길 바란다.
동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거나, 전국에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의 문을 두드려보자!

 

 

 

박성원

국립정신건강센터 기획조정과장

 

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http://www.mentalhealth.go.kr/portal/bbs/bbsDetail.do?bbsId=BBSINIT_2&nttId=521)